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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대한임상순환기학회 공보부회장(전 안산시의사회장)

돼지들이 소풍을 갔는데 인솔자가 자신을 빼고 인원을 점검해 총원이 맞지 않는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는 우화가, 고지를 점령하란 지휘관의 명령에 우르르 산으로 올라갔으나 "이 산이 아닌가 봐"라는 '덩달이 시리즈' 우스갯소리가 현실에서 벌어졌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인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발사르탄 발암 물질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중국산 원료로 만든 제네릭은 싸구려 불량 복제약이 아닌 '정상 의약품'이다. 제조공정을 바꾸는 과정에서 소위 '발암 의심물질'이 발견돼 감독 당국인 유럽의약품안전청(EMA)에 자진신고했고, 그에 따라 리콜을 권고했다. 

해당 발사르탄 원료 물질은 국내에 반입된 적이 없다. 그런데 왜 문제가 됐고, 무슨 연유로 난리가 났을까? 

이번에 문제가 된 발사르탄의 원료 물질이 중국발 가짜 계란·유해 고춧가루·시멘트 호두·재활용 시궁창 식용유 등 엉터리 짝퉁 불량품이라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논란의 원인을 제공한 '제지앙 화하이(zhejiang Huahai Pharmaceutical Co.)'는 미국과 유럽의 유수 제약사에 원료의약품을 수출하고 있으며, 미국 증권시장에도 상장된 '정상기업'이다. 발사르탄 원료뿐 아니라 제약 원료 중간 단계 물질을 포함해 30∼40가지 재품을 생산하는 대형 제약사다.

제지앙 화하이는 제약 공정 변경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NDMA라는 2A군 발암의심물질을 인지하자 물질을 공급한 유럽의 의약품 감독관청인 EMA에 자진 신고했다. 

과거 대부분의 제네릭 약품은 각국 제약회사가 직접 생산했다. 최근에는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들도 단가를 줄이고,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원료 생산회사에서 원료를 수입해 제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아시아, 특히 인도와 중국의 회사들이 원료 의약품 생산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원료 회사는 제약 원료의 중단 단계 물질과 API(Active Pharmaceutical Ingredient)를 생산하고 있다. 완제품을 만드는 글로벌 제약사들은 API를 수입해 캡슐과 같은 부형제(excipients)와 합쳐 약을 만든다. 

미국 식품의약품안전국(FDA)이나 유럽 EMA는 단지 약효나 의약품동등성 시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조 공장의 시설과 기준을 따진다.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므로 아무 제약회사나 쉽게 통과할 수 없다. 

허가를 받은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리와 감독이 철저하므로 허가를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제조 공정의 변경 혹은 변화는 생산 기술의 혁신 차원에서 불가피하며, 반드시 해야 할 기업의 '정상활동'이다. 

공정을 바꿀 경우에도 기업이 임의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미국FDA나 유럽 EMA 같은 감독기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번 중국발 발사르탄 원료 의약품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만일 NDMA라는 2A군 발암 의심물질을 발견·인지하고도 이를 감췄다면 인증과 수입 허가를 취소한다 기업으로서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므로 감출 이유도 숨길 필요도 없다.

물론 이 원료로 만든 제네릭이 오리지널과 약효가 동등하다고 보장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이라는 별도의 과정을 통해 입증할 문제이며, 이 사안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문제가 된 중국산 발사르탄 원료, 즉 공정 변화의 산물은 유럽의 몇몇 나라에만 공급됐으며, 한국은 공급이 안됐다는 보도가 있다. 

제지앙 화하이 사는 제조 공정을 바꾸는 과정에서 발생한 물질이 극소량 함유된 원료의약품을 공급한 국가에만 통보했다. 이 원료의약품을 공급하지 않은 한국은 당연히 통보를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외국 언론보도만 접하고, 실태 파악이나 관계 기관은 물론 심지어 생산자에게 확인 과정도 없이 소위 '국민 건강을 위한 선제적 조치'라면서 유례없는 대규모 판매정지를 감행했다. 그것도 토요일 휴무일에 발표함으로써 국민의 불안을 극대화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일선 의료 기관들의 업무를 마비시켰으며, 고혈압 치료제 전반에 대한 근거 없는 국민적 불신을 야기함으로써 '만성질환 관리'라는 국가적 과제 해결에 치명적인 타격을 줬다. 

발사르탄과 상관없는 고혈압 치료제를 복용 중이던 환자들이 임의로 복용을 중단한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사태가 이런데도 식약처장은 전혀 책임질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무능하고, 무지하며, 경솔하기까지 한 식약처는 물론 '눈치의 달인'인 보건복지부는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기 보다는 현장의 혼란만 부추기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만약 정부가 해당 약을 복용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환자들에게 의약품 교체를 권고하려 했다면, 약국에서 최종적으로 조제한 약을 조사해 환자에게 직접 통보해야 한다. 이런 과정은 후폭풍을 감안해 시뮬레이션과 전문가 집단의 자문을 거쳐 신중하고 착실하게 진행한다. 

이 와중에 일부 직역 집단은 사건의 팩트와 의미는 도외시한 채 자신들의 정략적 목표에 부합되는 정치적 언동만 되풀이하고 있다.

진정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단 말인가? 정말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우리나라의 사회시스템은 붕괴된 것이나 다름없다. 실무적·전문적 지식이 부족해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못한 눈뜬 장님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만일 알면서도 모른체하는 것이라면 이건 나라도 아니다. 국가로서 실패한 것이다. 국민을 위해, 국가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또 무엇을 할 것이냐는 말이다.

이호준 대한임상순환기학회 공보부회장(전 안산시의사회장) desk@doctor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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